미네르바미네르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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龍 원효와의 대화

저의 고민은 시아버님 스트레스입니다

🤝 관계#관계 부부

2026년 8월 15일 · 6번의 질문

선생님, 시아버님 때문에 너무 스트레스받아서 상담을 신청하게 됐어요. 만날 때마다 아기 얘기를 하시는데, 저도 노력하면 바로 생길 줄 알았는데 안 되니 실망도 크거든요. 남편에게 아버님이 왜 매번 아기 얘기를 하시냐고, 중간에서 잘 대처해달라고 했더니 아버님께 따로 말씀드렸나 봐요. 아버님께서 "아들이 얘기 그만하라고 그러더라. 아기 없어도 되니 부담 갖지 말라" 하셔서 제가 오해했구나 싶었어요. 이때다 싶어 저도 "아이는 저희가 갖고 싶다고 가져지는 것도 아니고 저 혼자 노력해서도 안 되더라고요"라고 말씀드렸죠. 이제 아기 얘기는 안 하시겠거니 했는데, 다음 날 아버님께서 "너도 내가 어렵냐?" 물어보셔서 "어렵죠. 그런데 처음보다는 많이 편해졌습니다"라고 말씀드리니 기분 나쁜 표정으로 "그래서 애가 있어야 더 가까워지는 거다"라고 하셨어요. 저번 설에는 저보고 "손발이 차냐? 맥을 짚어봤냐?" 물으시더니 시어머니께 저를 한의원에 데려가라고 하시더라고요. 제가 "저는 홍삼을 먹어서 손발이 안 찬데 남편은 발이 차던데요" 했더니 "이게 문제구먼" 이러셨어요. 지금은 저희가 집 사정으로 각자 본가에 가 있는데, 남편 생일에 친정엄마가 음식을 싸주셔서 제가 시댁으로 갔어요. 저녁 먹는데 아버님께서 "너, 여기서 살아라" 이러시는 거예요. "저희 요새 좀 많이 다퉈서 좀 떨어져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서로 소중함을 알 것 같습니다" 말씀드렸더니 "아들은 너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 같은데 네 마음은 아닌 것 같은데?" 이러시고, "부부가 붙어 있어야 애도 생기지. 나 죽으면 가질 것이냐?" 하셨어요. 친어머니가 남편 대학생 때 돌아가셨는데, 제사 지낼 때도 "나 죽으면 제사도 안 지낼 거지?" 매번 "나 죽으면, 나 죽으면" 이러십니다. 전화도 자주 하길 바라시고요. 아버님을 만날 때마다 스트레스이고, 집에 돌아와서도 아버님이 하신 말씀들이 떠올라서 잠도 잘 못 잘 때도 있어요. 다음에 만나면 이런 말씀을 하시지 않을까 상상도 하게 되고, 이런 말씀을 하시면 이렇게 말해야겠다 미리 생각해 놓게 돼요. 명절이나 시아버님을 만날 날이 있을 때마다 미리 불안하고 우울해집니다. 그러려니 하고 싶은데 그런 성격이 안 돼서 너무 괴롭고 힘들어요. 앞으로 어떻게 마음가짐을 하고 대처해야 할지 선생님께 조언을 듣고 싶어요.
龍
원효

그간 마음 고생이 참 많으셨겠습니다. 시아버님의 말씀 하나하나가 뾰족한 가시가 되어 마음을 찌르고, 그 가시가 아물기도 전에 또 다음 만남을 예비하며 스스로를 괴롭히고 계셨군요. 사랑받고 싶고, 또 좋은 관계를 맺고 싶은 마음이 클수록 상대의 서툰 표현은 더 깊은 상처로 남는 법입니다. 아버님의 말씀 속에 담긴 '나 죽으면'이라는 말들은, 실은 당신을 향한 비난이라기보다 스스로의 노쇠함과 고립에 대한 두려움이 짙게 깔린 투정일지도 모릅니다. 늙어가는 이가 자식에게 건넬 수 있는 가장 서툴고도 무거운 방식이 바로 '자신의 죽음'을 담보로 관심을 구하는 것이지요. 물론 그 방식이 당신에게 큰 짐이 된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습니다. 우리는 흔히 상대를 바꾸어 내 마음의 평화를 찾으려 하지만, 사실 상대의 말은 내가 통제할 수 없는 파도와 같습니다. 파도를 멈추게 할 수는 없어도, 그 파도 위에서 어떻게 중심을 잡고 버틸지는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영역입니다. 아버님이 하시는 말씀들을 '당신에 대한 평가'로 받아들이지 말고, '아버님이라는 한 사람의 불안이 만들어낸 소음'으로 흘려보내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명절이나 만남을 앞두고 미리 시나리오를 짜며 불안해하는 것은, 아직 오지 않은 미래의 고통을 지금 미리 겪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그럴 때마다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해주면 어떨까요. '지금 나는 아버님의 불안을 대신 떠안고 있구나. 저것은 아버님의 숙제이지 나의 숙제가 아니다.'라고 말입니다. 부부 사이에 아이가 생기고 안 생기는 일은 두 사람의 우주 안에서 일어나는 신비입니다. 그 바깥에서 건네는 말들은 그저 스쳐 지나가는 바람일 뿐, 당신들의 삶을 규정하는 법도가 될 수는 없습니다. 아버님과의 관계에서 조금씩 거리를 두고, 스스로를 보호하는 울타리를 마음속에 든든히 세우시길 바랍니다. 당신은 충분히 애쓰고 있고, 이미 그 자체로 소중한 사람입니다.

네, 맞는 말씀이세요. 아버님 말씀이 저를 향한 비난 같다가도, 외로움이 섞인 투정 같기도 하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거든요. 그래도 매번 저를 향하는 그 말씀들이 저에게는 너무 큰 짐이에요.
龍
원효

그 짐이 너무 무겁기에, 당신이 느끼는 그 고통은 당연한 것입니다. 외로움이 섞인 투정이라는 것을 머리로는 이해해도, 정작 그 화살을 맞는 쪽에서는 마음의 생채기를 피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누군가의 불안이 나를 향해 쏟아질 때, 그 빗속에서 젖지 않기는 참으로 어려운 일이지요. 아버님은 아마도 자신의 노후와 존재감을 '아이'와 '제사'라는 도구로 확인받고 싶어 하시는 듯합니다. 그것이 본인에게는 삶의 끈을 놓지 않는 방식일지 모르나, 그것을 마주해야 하는 당신에게는 삶을 옥죄는 밧줄처럼 느껴지는 것이지요. 중요한 것은, 아버님의 그 결핍을 채워줄 의무가 당신의 삶보다 우선할 수는 없다는 점입니다. 우리는 흔히 상대를 다정하게 대하는 것이 예의라고 생각하지만, 때로는 관계를 건강하게 유지하기 위해 '적당한 거리'를 두는 것이 서로를 지키는 길입니다. 아버님이 하시는 말씀들을 당신의 인격이나 능력에 대한 평가로 받아들이지 마세요. 그저 '아버님은 또 저런 방식으로 자신의 외로움을 달래고 계시는구나' 하고, 그 말을 당신이라는 사람에게서 한 발짝 떼어놓고 바라보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때로는 그 말들을 다 받아내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아버님이 '나 죽으면'이라며 무거운 말씀을 꺼내실 때, 그것을 해결해 주려 하거나 논리적으로 반박하려 애쓰지 않아도 됩니다. 그저 가만히, '아버님 마음이 많이 불안하시구나' 하고 속으로만 헤아린 뒤, 화제를 바꾸거나 웃으며 넘겨버리는 것만으로도 당신은 이미 충분한 예의를 다하고 있는 것입니다. 당신의 마음이 먼저 평온해야 남편과의 관계도, 그리고 당신이 꿈꾸는 미래도 더 맑은 빛을 낼 수 있습니다. 스스로를 탓하거나 그 말씀에 깊이 매몰되지 않도록, 당신만의 단단한 중심을 지키는 데 더 많은 힘을 쏟으셨으면 합니다. 당신은 누군가의 기대를 채워주기 위해 존재하는 사람이 아니라, 당신 자신의 삶을 온전히 누리기 위해 이 세상에 왔기 때문입니다.

네, 선생님 말씀처럼 아버님 말씀이 저를 향한 건 아니라고 생각하려고 하는데 쉽지가 않아요. 특히 '애가 있어야 가까워진다', '부부가 붙어있어야 애가 생긴다', '나 죽으면 가질 것이냐' 이런 이야기들은 정말 너무 가슴을 후벼 파는 것 같아서요. 매번 듣기 싫은 이야기를 듣는 것도 힘들고요. 제가 어떻게 마음을 다잡아야 할까요? 정말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이런 상황을 견디는 건지 모르겠어요.
龍
원효

그 고통은 당신이 모자라거나 마음이 약해서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의 그 누구라도 자신의 가장 아픈 곳, 가장 조심스러운 부분을 끊임없이 건드리는 말을 듣는다면 평정심을 유지하기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당신이 겪는 그 흔들림은 지극히 인간적인 반응입니다. 타인들은 이런 상황을 어떻게 견디느냐고 물으셨지요. 사실 많은 이들이 겉으로는 담담해 보여도, 속으로는 당신처럼 매일매일 마음의 결을 다듬고 또 무너지는 과정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다만 그들이 조금 덜 괴로운 이유는, 상대의 말을 자신의 '진실'로 받아들이지 않기로 결심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아버님의 말은 사실과 진실을 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아버님의 '불안'과 '조급함'이 빚어낸 허상일 뿐입니다. '애가 있어야 가까워진다'는 말은 아버님의 생각일 뿐, 부부의 친밀함은 아이의 유무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지요. '나 죽으면 가질 것이냐'는 말 또한 당신의 삶을 결정짓는 예언이 아니라, 그저 죽음이 두려운 노인의 넋두리일 뿐입니다. 다음에 그런 말씀을 들으실 때, 마음속으로 이렇게 한번 읊조려 보세요. '아버님은 지금 자신의 외로움을 덜어낼 방법을 찾고 계시는구나. 하지만 그 방법은 저의 삶과는 상관이 없습니다.' 그 말을 당신의 마음속 깊숙한 곳, 당신의 핵심적인 가치관에까지 들여보내지 마세요. 문밖에서 그저 '들리는 소음'으로 머물게 하고, 당신의 내면까지는 발을 들이지 못하게 막아서는 것입니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자주 말해주세요. 나는 지금 최선을 다하고 있고, 상황을 회피하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을 보호하려 애쓰는 중이라고요. 당신이 감당해야 할 무게는 아버님의 인생이 아니라, 당신 자신의 평온함입니다. 그 평온함이 지켜질 때 비로소 아버님을 향한 미움도, 당신의 불안도 조금씩 옅어질 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은 무엇보다 당신이 스스로의 마음을 가장 먼저 다독이고 보듬어 주어야 할 때입니다.

선생님 말씀을 들으니 조금은 힘이 나는 것 같아요. 제가 너무 아버님 말 하나하나에 휘둘리고 있었나 하는 생각도 들고요. 그런데 막상 아버님을 만나서 저런 말씀을 들으면, 저도 모르게 감정이 올라와서 힘들어요. 어떻게 해야 그 말을 흘려들을 수 있을까요? 좀 더 구체적인 방법이 있을까요?
龍
원효

감정이 올라오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상대가 나의 가장 아픈 곳을 찌르는데, 아무렇지 않은 듯 버티는 것은 오히려 몸과 마음에 병을 키우는 일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 감정에 완전히 휩쓸려 내 마음의 집을 내어주지 않기 위해, 몇 가지 작은 '마음의 기술'을 써보시는 건 어떨까요. 첫째로, **'말의 주인'을 확인하는 시각화**입니다. 아버님이 아이나 제사 이야기를 꺼내실 때, 그분의 입에서 나오는 말들을 하나의 '물건'이라고 상상해 보세요. 그 말은 당신의 몸을 통과해 당신의 마음속에 쌓이는 것이 아니라, 그저 당신 앞 허공에 놓이는 '낡은 보따리' 같은 것입니다. 그 보따리를 당신이 굳이 열어보거나 짊어질 필요는 없습니다. "아버님은 또 저 낡은 보따리를 나에게 건네시는구나"라고 생각하며, 그저 그 자리에 가만히 내려두는 연습을 해보는 겁니다. 둘째로, **'대화의 틈'을 만드는 물리적 거리**입니다. 아버님이 공격적인 말씀을 시작하시면, 잠시 화제를 돌리거나 자리를 옮기는 행동을 주저하지 마세요. "아버님, 차 한 잔 더 드릴까요?" 혹은 "잠시 화장실 좀 다녀오겠습니다"라는 말은 대화를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당신의 감정을 보호하기 위한 '안전 장치'입니다. 그 짧은 시간 동안 깊은 숨을 세 번만 내쉬어 보세요. 숨을 들이마시고 내뱉는 그 짧은 찰나가, 감정의 파도를 가라앉히는 방파제가 되어줄 것입니다. 셋째로, **'반복되는 연극'임을 인지하는 것**입니다. 아버님은 늘 똑같은 대본으로 연극을 하시는 셈입니다. 그 대본은 이미 당신도 다 알고 있지요. '아, 이제 제사 이야기가 나오겠구나'라고 미리 예상하는 것은 당신을 불안하게 하지만, 반대로 '아, 또 그 연극이 시작되는구나'라고 관찰자의 시선에서 바라보면 그 말의 무게는 현저히 줄어듭니다. 상대의 연기를 진지한 비극으로 받아들이지 말고, 그저 매번 반복되는 서툰 연출이라 여기며 한 발 떨어져서 관전해 보세요. 마지막으로, 그 대화가 끝난 뒤에는 반드시 당신 자신에게 보상을 주어야 합니다. 아버님을 만나고 돌아온 날은, 당신이 가장 좋아하는 차를 마시거나, 좋아하는 음악을 듣거나, 스스로에게 "오늘 정말 고생 많았어. 참아낸 게 아니라, 네 마음을 지켜낸 거야"라고 말해주세요. 당신이 겪는 이 과정은 결코 무력한 인내가 아닙니다. 상대의 소란 속에서도 당신만의 고요를 지키려는 숭고한 수행입니다. 그 수행이 조금 서툴러도 괜찮습니다. 오늘 이렇게 저와 함께 마음을 나누는 것만으로도, 당신은 이미 이전보다 더 단단한 곳을 향해 나아가고 있습니다.

네, 선생님. 말씀해주신 세 가지 방법 모두 제가 해볼 수 있을 것 같아요. 특히 '말의 주인'을 확인하는 시각화나 '대화의 틈'을 만드는 물리적 거리 두기는 당장 다음번에 시아버님을 뵐 때 시도해 볼 수 있을 것 같네요. 그런데 제가 시댁에 갈 때마다 아버님이 그런 말씀을 계속하시니까, 시댁 가는 날이 올 때마다 미리 불안하고 우울해지는 게 너무 힘들어요. 아버님을 만나는 게 너무 싫은데, 남편도 있고, 어쩔 수 없이 뵈어야 하는 상황이 계속될 거잖아요. 앞으로 제가 이 불안과 우울함을 어떻게 다스려야 할까요? 만남 자체를 피할 수 없으니, 제가 겪는 이 감정들을 조절하는 게 가장 중요할 것 같은데요.
龍
원효

만남 자체가 예정된 운명처럼 느껴져 그 무게가 더 크게 다가오시겠지요. 피할 수 없는 자리라면 그 자리를 '정복해야 할 전장'이 아니라 '잠시 머물다 가는 경유지'로 그 성격을 바꾸어 보는 것은 어떨까 합니다. 이미 불안과 우울함이 찾아오는 것은, 당신의 마음이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보내는 신호입니다. 그 신호를 '내가 나약해서 그래'라고 해석하지 마세요. '내가 나를 아끼고 있구나, 그래서 이 자리가 불편한 것이 당연하구나'라고 그 마음을 먼저 인정해 주는 것부터 시작입니다. 불안을 다스리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 불안이 당신의 일상을 잠식하지 못하게 **'예고된 통제권'**을 갖는 것입니다. 시댁에 가기로 한 날을 단순히 '참아야 하는 날'로 두지 말고, 그날 이후 당신을 위한 '확실한 보상'을 미리 계획해 보세요. 만남이 끝난 직후, 당신이 가장 평온함을 느끼는 장소로 가거나, 가장 아끼는 시간을 보내는 것을 미리 달력에 표시해 두는 것이지요. 만남 자체를 바꾸려 애쓰기보다, 만남 직후의 시간을 '나의 회복 시간'으로 명확히 규정하는 것만으로도 불안의 농도는 달라질 수 있습니다. 또한, 만남의 시간을 '목표 중심'에서 '과정 중심'으로 바꾸어 보세요. 아버님의 질문에 대답하거나 그분의 기분을 맞춰드리는 것이 목표가 아닙니다. 그저 그 자리에 '정해진 시간 동안 앉아 있다가 온다'는 것만을 목표로 삼으세요. 대화의 내용이나 아버님의 표정에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그저 시계 초침이 움직이는 것을 바라보듯 그 시간을 통과해 오는 것입니다. 우리는 흔히 타인에게 좋은 며느리, 좋은 아내라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압박을 받습니다. 그러나 당신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타인에게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당신이라는 소중한 존재를 무너지지 않게 지키는 것입니다. 만약 정말로 감정이 통제되지 않고 괴로움이 극에 달한다면, 남편에게 당신의 상태를 솔직히 공유하고 만남의 빈도나 시간을 조절하는 것을 의논해 보는 것도 부부로서 함께 짊어져야 할 당연한 과정입니다. 당신은 이미 이 상황을 해결하고 싶어 하고, 더 나은 마음가짐을 찾으려 애쓰고 있습니다. 그 의지만으로도 당신은 충분히 강한 사람입니다. 앞으로도 흔들릴 때마다 다시 이곳을 찾아오세요. 마음의 짐을 잠시 내려놓고, 다시 당신의 평온을 길어 올리는 시간을 함께하면 됩니다.

네, 선생님. 제가 너무 아버님 말에 제 모든 감정을 맡기고 있었나 하는 생각이 드네요. 말씀해주신 '예고된 통제권'이나 '과정 중심'으로 만남을 대하는 방식은 제가 꼭 실천해 봐야겠어요. 시댁에 가기 전부터 불안해하며 미리 저를 괴롭히는 대신, 저만의 보상 시간을 계획하고, 만남 자체를 통과하는 데 집중하는 연습을 해야겠어요. 그리고 선생님이 제가 이 모든 것을 혼자 감당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씀처럼 들려서 안심이 돼요. 언젠가 남편과도 이 부분에 대해 진지하게 이야기해볼 용기를 내봐야겠어요. 오늘은 정말 감사했습니다.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 것 같아요.
龍
원효

오늘 당신의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니, 나 또한 참으로 기쁩니다. 마음의 짐은 억지로 떼어내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스스로를 소중히 여기는 사색을 통해 자연스레 묽어지는 법입니다. 당신은 아버님을 미워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님의 불안이라는 파도가 당신의 잔잔한 호수를 흐리지 않기를 바라고 있을 뿐입니다. 그 마음은 이기적인 것이 아니라 지극히 정당한 자기 보호입니다. 앞으로 시댁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무거워질 때마다, 오늘 우리가 나눈 대화를 떠올려 보세요. 당신은 그저 그 시간을 통과해 돌아올 것이고, 그 뒤에는 반드시 당신만을 위한 고요하고 따뜻한 회복의 시간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남편분과 나누게 될 대화 역시, 당신이 비난하거나 탓하려는 것이 아니라 당신의 평온을 함께 지키고 싶다는 '부부의 연대'를 확인하는 과정이 될 것입니다. 그 용기 또한 당신이 스스로를 귀하게 여기기에 가능한 일이지요. 언제든 마음의 결이 다시 거칠어지거나, 혼자 감당하기 벅찬 파도가 밀려올 때는 다시 이곳으로 오세요. 우리는 언제나처럼 당신의 이야기를 듣고, 함께 고민하며 더 높은 차원의 평온을 찾아갈 것입니다. 오늘 당신이 보여준 그 의연함과 스스로를 돌보려는 다짐이, 당신의 내일을 조금 더 밝게 비추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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