鹿 맹자와의 대화
아이의 경계선 성격장애와 조울증
2026년 8월 15일 · 6번의 질문
어머니, 그간 홀로 짊어지고 오신 고통의 무게를 어찌 말로 다 헤아릴 수 있겠습니까. 아이가 겪은 시련과 그로 인해 무너져 내리는 가정의 모습을 지켜보는 어머니의 심정은 그야말로 불길 속을 걷는 것과 다를 바 없을 것입니다. 자식을 향한 마음이 비난으로 변질되었을 때 느꼈던 자괴감과, 지금 아들을 마주하며 느끼는 무력감은 어머니의 삶을 깊게 갉아먹고 있었군요. 어머니께서 스스로를 돌아보며 아이를 '틀리다'고 규정했던 과오를 마주하신 것은 매우 고통스러운 일이나, 동시에 그 마음 안에 숨겨진 사랑과 회한을 발견하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사람의 마음은 본래 선한 뿌리를 가지고 태어나지만, 척박한 환경과 어긋난 관계 속에서는 그 싹이 뒤틀리기 마련입니다. 지금 아들이 보여주는 날 선 모습과 무기력함은, 어쩌면 세상으로부터 상처받은 마음이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쳐놓은 가시이자 비명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의사가 어머니께 할 일이 없다고 한 것은, 어머니의 잘못을 탓하는 것이 아니라 어머니께서 짊어진 짐을 조금은 내려놓으라는 뜻일 것입니다. 자식은 부모의 소유가 아니며, 부모라고 해서 자식의 삶을 온전히 통제하거나 바꿀 수는 없습니다. 아들이 밤낮이 바뀌어 지내는 것은 아들의 내면이 세상과 단절된 채 자신의 어두운 방 안에 갇혀 있다는 뜻이겠지요. 어머니께서 강제로 입원을 고민하시는 것은 자식을 살리고 싶은 절박함 때문이겠으나, 그것이 아들에게 또 다른 폭력으로 비춰질까 두려운 마음 또한 크실 것입니다.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어머니께서 먼저 지치지 않고 중심을 잡는 일입니다. 아들의 삶에 일일이 개입하여 그것을 바로잡으려 애쓰는 것은, 오히려 어머니와 아들 사이의 긴장만을 높일 뿐입니다. 내 안의 기운이 흔들리면 상대의 기운도 함께 흔들리기 마련입니다. 아들을 통제하려는 마음을 잠시 내려놓고, 그저 묵묵히 자신의 자리를 지키며 어머니 스스로의 삶을 돌보는 것이 우선입니다. 병원 치료와 입원 문제는 아들이 스스로 선택할 수 있도록 기다려주거나, 혹은 아들이 거부할 수 없는 상황이 닥쳤을 때 전문가와 함께 단호하게 대처할 준비를 하되, 지금 당장 무언가를 바꾸려 조급해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어머니께서 스스로를 탓하며 쏟는 에너지를, 이제는 어머니 자신의 평온을 찾는 데 조금씩 나누어 쓰시길 바랍니다. 백성이 편안해야 나라가 다스려지듯, 어머니의 마음이 먼저 편안해야 이 위태로운 상황도 비로소 길을 찾을 것입니다.
어머니, 아이가 어둠 속에서 홀로 깨어 있고 어머니께서 그 모습을 지켜보며 밤을 지새우는 시간은, 그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깊은 고독의 현장일 것입니다. 자식이 어둠 속에 갇혀 있는데 어찌 부모로서 그저 지켜만 볼 수 있겠느냐는 그 마음, 그것 또한 자식을 향한 지극한 사랑의 다른 이름임을 압니다. 하지만 어머니께서 스스로를 탓하며 아들의 낮과 밤을 바꾸려 애쓰는 과정에서, 어머니의 마음은 더욱 메말라가고 아이와의 관계는 더 날카롭게 벼려지고 있습니다. 아이가 낮과 밤을 뒤바꾼 채 세상과의 연결을 끊고 있다면, 그것은 현재 아이가 마주한 세상이 너무나 버겁고 두렵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 방은 아이가 유일하게 자신의 고통으로부터 숨을 수 있는 동굴인 셈이지요. 어머니께서 그 방의 문을 강제로 열어젖히거나 아들의 시간을 억지로 바꾸려 할수록, 아이는 더 깊은 동굴 속으로 숨어들 것입니다. 지금 어머니께서 하실 수 있는 가장 어진 일은, 아이의 시간을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어머니 자신의 시간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아이가 밤에 깨어 있다면, 어머니께서는 오히려 낮에 어머니만의 세상으로 나가십시오. 아이를 위해 무엇을 해줄지 고민하는 대신, 어머니께서 무엇을 할 때 잠시나마 숨을 쉴 수 있는지 살피는 것이 먼저입니다. 산책을 하거나,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거나, 혹은 그저 고요히 앉아 어머니의 마음을 다독이는 시간 말입니다. 어머니께서 밖으로 나가 웃음을 되찾고 삶의 활기를 보여주는 것, 그것이 아이에게는 무언의 메시지가 될 것입니다. '어머니가 나를 비난하지 않고, 나를 바꾸려 하지 않으며, 그저 자기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아이가 조금씩 느끼게 될 때, 아이의 경계심도 아주 천천히 허물어질 것입니다. 지금 당장 아들을 변화시키려 한다면 어머니의 조급함이 아이에게 전해져 오히려 반발심만을 키울 뿐입니다. 아이가 스스로 세상 밖으로 나올 용기를 낼 때까지, 어머니께서 먼저 단단하고 고요한 중심을 잡고 기다려주는 것, 그것이 지금 어머니께서 하실 수 있는 가장 큰 인(仁)입니다. 어머니께서 스스로를 돌보는 일을 멈추지 마십시오. 어머니의 삶이 무너지면 아이를 지탱할 기둥조차 사라지는 것과 같습니다. 무거운 짐을 잠시 내려놓고, 그저 오늘 하루 어머니의 평안을 위해 아주 작은 것 하나라도 시작해 보시길 권합니다.
어머니, 그 마음이 얼마나 무거운지 헤아려집니다. 자식이 고통받고 있는데 어머니 홀로 빛을 보러 나가는 것이 마치 죄를 짓는 것처럼 느껴지시는 것이겠지요. 하지만 한번 생각해보십시오. 어머니께서 아이의 어둠 속에 함께 갇혀서, 그 무거운 공기를 나누어 마시며 같이 시들어가는 것이 진정 아이를 돕는 길입니까, 아니면 어머니도 아이도 함께 구렁텅이로 빠져드는 길입니까. 사람이 사람을 살리는 힘은 억지로 끄집어내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일어설 수 있게끔 옆에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는 데서 나옵니다. 지금 어머니의 마음이 불안과 죄책감으로 가득 차 있다면, 그 기운이 고스란히 아이에게 전해져 아이는 더욱 숨을 쉴 수 없게 될 것입니다. 어머니께서 밝은 기운을 잃고 아이의 어둠에만 몰두하는 것은, 사실 아이를 돕는 것이 아니라 아이와 함께 어둠 속에서 길을 잃는 일과 다름없습니다. 어머니께서 낮에 밖으로 나가 어머니만의 시간을 보내는 것은, 아이를 버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아이를 다시 맞이할 준비를 하는 일입니다. 어머니께서 밖에서 맑은 공기를 마시고, 사람을 만나고, 어머니 본연의 삶을 회복하여 '어머니가 예전보다 조금 더 편안해졌구나' 하는 기운을 집안에 들여놓을 때, 비로소 아이도 그 평온함에 기대어 조금씩 세상 밖으로 고개를 내밀 틈이 생기는 법입니다. 지금 어머니께서 하셔야 할 일은 아들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아들을 대하는 어머니의 마음가짐을 바꾸는 것입니다. 어머니가 당당하고 건강하게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뒷모습을 아이에게 보여주십시오. 그것은 말로 하는 그 어떤 설득보다 훨씬 더 큰 힘을 가집니다. 어머니께서 먼저 스스로를 귀하게 여기고 돌보는 모습이, 아이에게는 '나도 이렇게 다시 살아도 되는구나'라는 희망의 첫 단초가 될 것입니다. 지금 당장 밖으로 나가 어머니의 맑은 정신을 다시 길러오십시오. 그것이 자식을 살리는 가장 지혜로운 길입니다.
어머니, 아들의 증오와 원망은 하루아침에 쌓인 것이 아닙니다. 어머니를 향한 그 날 선 감정들은 사실 어머니 개인을 향한 것이라기보다, 자신이 처한 고통스러운 현실과 무력한 자신을 향한 분노가 어머니라는 거울에 투영된 것일지도 모릅니다. 아이는 자신의 고통을 알아주지 못했던 과거의 어머니를 미워하고 있는 것이지요. 어머니께서 갑자기 태도를 바꾸어 즐겁게 지내려 하신다면, 아이는 처음에는 그것을 자신에 대한 무관심이나 외면으로 받아들여 더 큰 화를 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어머니께서 그 분노 앞에서 함께 화를 내거나, 혹은 죄책감에 눌려 다시 비굴해지지 않고 그저 묵묵하고 담담하게 어머니의 일상을 이어가신다면, 아이의 증오도 머물 곳을 잃게 됩니다. 사람은 누구나 비난받을 때 방어벽을 세우지만, 상대가 평온하고 흔들림 없는 태도로 자신을 대할 때는 그 방어벽을 거두게 됩니다. 어머니께서 어머니의 삶을 찾으시는 것은 아이를 방치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에게 '나와 다른 독립된 인격체인 어머니'를 보여주는 과정입니다. 아이가 어머니를 증오하는 것은 어머니가 자신의 삶에 너무 깊숙이 개입하여 상처를 주었기 때문인데, 어머니께서 자신의 삶을 온전히 사시게 되면 아이는 비로소 어머니의 간섭으로부터 해방감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물론 아이가 화를 낼 때 마음이 흔들리실 겁니다. 그때마다 이렇게 스스로에게 일러주십시오. '아이가 지금 내게 화를 내는 것은 나를 향한 공격이 아니라, 스스로의 고통을 쏟아내는 것이구나.' 아이의 감정을 어머니의 죄책감으로 받아내지 마시고, 그저 아이의 감정이 지나가는 바람이라고 생각하며 담담히 지켜봐 주십시오. 어머니께서 스스로를 귀히 여기고 평온함을 유지하는 것, 그것은 아이에게 주는 가장 큰 선물입니다. 어머니가 흔들리지 않는 바위처럼 자기 자리를 지키고 있다면, 파도처럼 일렁이는 아이의 감정도 언젠가는 어머니라는 평온한 해안에 닿아 잦아들 것입니다. 어머니께서 먼저 스스로를 온전히 사랑하는 법을 보여주실 때, 아이도 비로소 스스로를 사랑하는 법을 배우게 될 것입니다.
어머니, 습관이란 것은 마치 오래된 길과 같아서, 의식하지 않으면 늘 걷던 그 험한 길로 발길이 향하기 마련입니다. 어머니께서 스스로의 습관을 걱정하시는 것 자체가 이미 변화의 시작점에 서 계시다는 증거입니다. 자신을 살피는 마음, 그것이 곧 지혜의 출발입니다. 잔소리와 비난은 대개 상대가 내 뜻대로 움직이지 않을 때, 내 마음의 불안을 이기지 못해 튀어나오는 것입니다. 아이가 눈앞에 보일 때 입 밖으로 비난이 나오려 하거든, 잠시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 스스로에게 이렇게 물어보십시오. '내가 지금 하려는 말이 아이를 위한 것인가, 아니면 내 불안을 잠재우기 위한 것인가.' 대부분의 경우 후자일 것입니다. 그럴 때는 차라리 입을 다물고 그 자리를 떠나 어머니의 공간으로 돌아오는 것이 낫습니다. 상대를 바꾸려 애쓰는 대신, 어머니의 마음속에 있는 '사단(四端)'을 먼저 길러보세요. 아이의 아픈 모습을 볼 때, '왜 저럴까' 하는 판단 대신 '참으로 힘들겠구나' 하는 측은한 마음을 먼저 떠올리는 연습입니다. 비난이 튀어나올 자리에 측은함이 먼저 들어서면, 잔소리는 자연스레 잦아듭니다. 이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일이 아니니, 실수했다고 해서 또다시 스스로를 비난하며 자책하지 마십시오. 아이가 다시 어두운 방으로 들어갈 때, 어머니께서도 어머니만의 고요한 방으로 들어가십시오. 아이의 상태를 어머니의 성적으로 여기지 마시고, 그저 아이는 아이의 길을 걷고 어머니는 어머니의 길을 걷는다고 생각하십시오. 어머니께서 스스로를 귀하게 대접하고, 어머니의 일상을 정성껏 돌보는 모습이 쌓이다 보면, 어느 순간 아이를 대하는 어머니의 눈빛과 말투가 달라져 있음을 스스로 느끼실 것입니다. 내 안의 기운이 맑고 곧으면, 상대의 거친 기운도 함부로 어머니를 흔들지 못하는 법입니다. 오늘 하루, 어머니께서 가장 좋아하시는 일을 하나 찾아 그것에 정성을 쏟아보시는 건 어떨까요.
그 마음의 결심이 참으로 귀합니다. 어머니께서 스스로를 돌보고 마음의 중심을 세우는 것, 그것은 아이를 방치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아이에게 '어머니라는 든든한 등대'를 되찾아주는 일입니다. 등대가 바다의 파도를 멈추게 할 수는 없으나, 파도 속에서 길을 잃은 배가 방향을 잡을 수 있도록 묵묵히 제 자리를 지킬 뿐이지요. 어머니께서 스스로를 귀히 여기는 연습을 시작하실 때, 때로는 예전의 습관이 불쑥 고개를 들지도 모릅니다. 그때마다 스스로를 너무 다그치지 마십시오. 이미 어머니께서는 자식을 향한 깊은 고민과 성찰을 통해, 아픔을 딛고 일어서려는 의지를 보여주셨습니다. 그 마음의 뿌리가 깊기에, 시간이 흐를수록 어머니의 삶에도, 그리고 아들의 삶에도 새로운 기운이 깃들 것입니다. 이제는 무거운 짐을 잠시 내려놓고, 어머니 자신의 숨소리에 귀를 기울여 보십시오. 낮 동안 세상의 밝은 빛을 마주하고, 어머니께서 좋아하는 소소한 일들을 하며 스스로를 다독이는 시간을 가지시길 바랍니다. 어머니가 먼저 평온해질 때, 그 평온함은 집안의 공기를 바꾸고, 언젠가는 아이의 마음속 깊은 곳까지 닿을 것입니다. 오늘의 대화가 어머니의 마음에 작은 안식처가 되었기를 바랍니다. 언제든 마음이 흔들리고 길을 잃을 것 같을 때, 다시 이곳으로 오셔서 마음을 나누어 주십시오. 어머니의 삶이, 그리고 아이의 삶이 본래의 선함을 향해 천천히, 그러나 분명하게 나아가기를 응원합니다.
